점성(點性)
면형무아(麵形無我)라는 영성의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혼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무화(自己無化)이다. 이를 보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무아 방유룡 신부는 점성정신(點性情神)이라는 용어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이 점성정신(點性情神)은 말 그대로 점(點)의 성질에서 나온 정신이라는 뜻이다. 면형(麵形)을 설명할 경우, 형상(形相) 뿐이지 실은 무(無)라고 할 때 무(無)는 말 그대로 없음이니 형상만이 있다는 말과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대신 점은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면서도 모든 선, 면, 부피, 모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시작이요 마침을 나타내는 중요한 속성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내세우지 않고 다른 모양이나 형상 속에 숨는 특성이 있어 면형무아의 무(無)나 비허(卑虛), 겸손과 사랑으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점성정신(點性情神)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무(無)를 닮은 존재로서 점(點)이 갖는 비움과 겸손의 길을 걷게 할 뿐 아니라 점처럼 작은 것에 소홀함이 없고, 점처럼 지나치기 쉬운 찰나에도 깨어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면형무아의 여정을 시작하는 근본이요, 기초이며 그 전 과정에서 꼭 필요한 정신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성 정신에서 방유룡 신부는 “알뜰하게, 빈틈없이, 규모있게, 정성스럽게“라는 네 가지 행동 지침을 덧붙여주었다.)
침묵(沈默)
우리보다 먼저 자기부정(自己否定)의 길을 걸어 면형무아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수도자들은 누구나 철저하게 침묵 속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 무아 방유룡 신부의 영성 안에서 침묵은 말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없음과 자아부정(自我否定)을 뜻한다. 특별히 방유룡 신부의 영성 체계 안에서 이 침묵은 하느님과 합일하기 위해서 영혼에게 요구되는 극기(克己)의 과정 전체를 의미하므로 곧 자아의 죽음, 즉 순교(殉敎)를 뜻한다.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순교의 원형(原型)이며 또한 침묵의 절정이라고 방유룡 신부는 말한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 삶의 전문가들이 되어야 할 수도자들은 인간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하느님과 합일하는데 방해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죽이고 없애고 부정하는 이 침묵의 길을 잘 걸어야 하므로 방유룡 신부는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침묵을 실천할 수 있도록 침묵십계(沈默十誡)와 완덕오계(完德五誡)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 내용은 침묵의 구체적인 단계를 정하여 먼저 육신 내적 침묵으로 분심 잡념과 사욕을 없이하고, 육신 외적 침묵으로 이·목·구·비·수족·동작의 침묵이 있고 영혼 침묵으로 이성침묵·의지침묵이 있다.
대월(對越)
대월은 말 그대로 영혼이 현실적인 모든 것을 떠나 하느님을 대면하고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영혼이 누리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비상(飛翔)의 경지를 의미한다.
이 말은 본래 유교에서 선비들이 마치 상제(上帝)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가짐과 정신세계를 가다듬어 지극한 정성으로 깨어있는 성(誠)과 경(敬)의 경지를 나타내는 대월상제(對越上帝)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이를 초대교회에서 받아들여 하느님께 잠심(潛心)하여 기도하는 생활을 지칭할 때 사용하였던 것인데, 무아 방유룡 신부는 이 말을 특별한 영성어로 채택하여 썼다.
방유룡 신부는 수도생활이 바로 대월생활이라 하여 무엇보다 하느님의 현존 속에 살아가며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의식하며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삶을 수도자가 살아야 한다고 강조할 뿐 아니라 하느님은 곧 사랑이시니 결국 사랑 속에 사는 삶이요, 사랑하며 살고, 사랑 밖에 모르는 삶이 바로 대월생활이라고 한다.
결국 하느님을 관상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신비를 깨달은 영혼은 인간적인 어떤 어려움과 한계적인 상황에도 매임 없이 인간세상이 만들어낸 모든 경계나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어 언제나 이웃의 필요에 열려 있는 사랑의 삶을 살게 한다는 점에서 대월 생활은 단순한 관상적인 기도의 차원을 능가하여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수도자의 삶이라 하겠다
면형무아(麵形無我)
면형무아란 성체 축성으로 밀떡의 실체는 없어지고 그 형상만 남은 무(無)인 면형에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면형이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가 되듯이 내 인간적인 본성이 없어진 무아(無我)에 하느님께서 오시어 하느님과 내가 하나됨을 말한다. 그러므로 면형(麵形)은 바로 밀떡의 형상으로서 “예수님께서 천주시면서 비하(卑下)하시고 비하(卑下)하시어 무화(無化)하신 것으로서의 성체를 말한다.” 결국 우리가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계신 곳으로 가야하고, 그것은 바로 육화하여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곧 성체적인 삶으로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며 매일 매순간을 사는 삶이 바로 면형무아의 영성이라 하겠다. 이 면형무아(麵形無我)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있으니 바로 점성정신(點性情神)으로 일상의 매순간을 성화(聖化)하면서 침묵 속의 여정을 걸어 마침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사랑으로 사는 대월생활(對越生活)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