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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인들
124위 복자들
복자 124위- 김시우·이시임 : 장애의 몸으로 형벌 견디고, 네살 아들 죽음에도 신앙 지키다 순교
경제 용어 중 ‘풍선효과’라는 게 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이와는 맥락이 좀 다르지만 박해 또한 풍선효과와 비슷한 결과를 불러왔다. 서울과 수도권, 충청 교회에 대한 조정의 박해가 시작되자 천주교 신자들은 대거 영ㆍ호남으로 피신한다. 이에 따라 복음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가 지역별로 풍선이 불거져 나오듯 했다.
그 대표적 계기는 1801년 신유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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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 김사집 프란치스코-가난한 이들에게 온정 베풀며 교회 서적 나눠주다 순교
박해시대 신자들은 특히 향주덕, 곧 믿음(신덕)과 희망(망덕), 사랑(애덕) 등 하느님께 대한 덕행을 깊이 묵상하며 그 실천에 힘썼다(로마 5,1-5 참조).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직접적 관계를 나타낸다는 뜻에서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불리는 향주덕을 통해 신자들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하느님을 받아들여 하느님과 일치를 이뤘다.
124위 순교복자 가운데 일명 ‘성옥’이라고도 불린 김사집(프란치스코, 1744…
Admin
복자 124위 - 윤지헌 프란치스코 :조선 교회 밀사 천거와 서양 선교사 요청 주범 지목, 능지처참당해
'능지처참’(陵遲處斬)이라는 형벌이 있다. 죄인을 죽인 뒤 시신의 머리와 팔ㆍ다리를 차례로 베어 여섯 부분으로 자르고 전국 각지에 보내 백성에게 보여줌으로써 경계로 삼도록 하는 극형 중 극형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공민왕 때 시작돼 1894년에 폐지되기까지 520여 년간 시행됐는데, 124위 중에도 능지처참형을 당한 순교자가 2위 있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이다.
이들에게 왜 능지…
Admin
복자 124위 열전- 한덕운 토마스 :박해시기 순교 교우 장례 치른 복자
서울에서 25㎞가량 떨어진 남한산성은 유사시 임시 수도 역할을 한 군사 요충지였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현 서울 송파구 삼전로 삼밭나루)에서 청 태종에 무릎을 꿇고 항복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중국식 성제와 서구 화기 도입에 따른 축성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한산성은 교회사에도 중요한 자리를 …
Admin
복자 124위 열전 - 홍익만·홍필주 : 신앙 증거하며 주님 품에 안긴 장인과 사위
▲ 복자 홍익만
▲ 복자 홍필주
‘혜경궁 홍씨’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모르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빈이자 정조의 생모인 데다 회고록 「한중록」의 지은이로 잘 알려져 있어서다.
왕가의 비극을 끌어안은 채 한 생애를 살아야 했던 이 여인은 정조 집권기인 1795년 회갑을 맞던 해에 「한중록」 제1편을 쓰고, 자신의 동생 홍낙임이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제주로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
Admin
복자 124위 - 김광옥·김정득 : 친척 사이로 같은 옥에 갇혀, 본향에서 볼 것 기약하며 순교
▲ 복자 김광옥
▲ 복자 김정득
순교지를 찾아다니다 보면, 종종 지명과 관련해 혼선이 빚어지는 일이 생긴다. 예산 여사울과 대흥 고을이 그중 하나다. 18∼19세기 당시 예산 여사울은 해미영, 곧 호서좌영에, 대흥면은 홍주목(현 홍성군)에 각각 속했다. 그래서 124위 시복자료집에도 김광옥(안드레아, ?∼1801)과 김정득(베드로, ?∼1801)의 출신지는 예산 여사울과 홍주 대흥 고을로 표기돼 있다. 실제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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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열전 <33> 이경도·경언 : 독실한 신앙의 부모 밑에서 자라, 형에 이어 동생도 순교
▲ 복자 이경도
▲ 복자 이경언
이경도(가롤로, 1780∼1802)와 순이(루갈다, 1782∼1802), 경언(바오로, 1792∼1827) 3남매를 얘기하자면, 그의 부모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부친 이윤하(마태오)는 유명한 실학자인 이익(1681∼1763)의 외손으로, 조선 교회 설립 직후인 1794년에 신앙을 받아들였고, 모친 안동 권씨는 조선 교회 설립 초기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인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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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열전 <32> 한정흠·김천애·최여겸 : 전주 감영서 만나 신분 초월해 서로의 버팀목 돼
‘하느님께서는 성소도 친구를 통해 지켜주신다’는 말이 있다. 하느님의 사랑과 부르심에 순교복자들도 서로 신앙을 권면하며 순교의 영성으로 응답했다. 한정흠(스타니슬라오, 1756∼1801)과 김천애(안드레아, 1760∼1801), 최여겸(마티아, 1763∼1801)은 전주 감옥에서 만난 인연으로 순교의 길을 함께 걸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된 세 순교 복자는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여러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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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124위 열전 <31>이국승 바오로 : 체포 후 숱한 형벌에 배교하지만, 하느님 은총으로 주님 품에 안겨
▲ 복자 이국승.
‘충청도’라는 지명은 1356년 고려 공민왕 때 충주와 청주의 첫 글자를 따 명명하면서 비롯됐다.
한때 충주와 청주, 공주, 홍주(현 홍성) 등 4개 도시 지명을 따 충공도·청공도·청홍도·공청도·공홍도·충홍도·공충도 등으로 불렸지만, ‘충청도’라는 지명을 가장 많이 썼다.
충청도는 오늘날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로 갈리지만, 옛적엔 편의상 충청좌ㆍ우도로 나눠 관할했다. 한양에서 볼 …
Admin
복자 124위 열전 <30>현계흠 : 전교와 교리 교육 힘쓴 약포상
조선교회가 ‘교회다운’ 틀을 갖춘 데는 주문모(야고보) 신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공동체를 이뤘기에 조선교회 신자들의 교리 지식은 ‘무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성직’ 제도는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게다가 당시 조선 공동체는 전교 또한 가족 중심으로 이뤄져 보다 많은 이들을 입교시키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상황이었다. 이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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